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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감각을 기르는 열 번의 수업 · 01 / 10

월급은 들어왔는데, 내 돈은 어디에 있을까

통장 잔액, 현금흐름, 순자산을 구분하고 비상자금과 목표 저축의 자리를 정합니다.

금요일 저녁, 지윤은 월급이 들어왔다는 알림을 보고 배달 앱을 열었다. 한 주쯤은 수고했으니 조금 비싼 저녁을 먹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 카드값이 빠져나갔고, 월세와 통신비가 그 뒤를 이었다. 월급날에는 넉넉해 보이던 숫자가 다음 주 수요일에는 제법 쓸쓸해졌다.

지윤은 이 강의에서 함께 돈을 살펴볼 가상의 인물이다. 월 실수령액은 300만 원. 특별히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통장에 돈이 쌓이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다. 인터넷에서 투자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좋은 종목을 찾는 방법이 쏟아졌지만, 정작 한 달에 얼마를 투자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통장 잔액보다 조금 넓은 장면을 봐야 한다. 지금 있는 돈, 앞으로 들어올 돈, 이미 쓰기로 한 돈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통장에는 약속된 지출도 들어 있다

통장에 100만 원이 있어도 다음 주 카드 결제액이 80만 원이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100만 원이 아니다. 아직 빠져나가지 않았을 뿐, 그중 상당 부분의 행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돈을 관리하는 첫 작업은 이런 약속을 찾아내는 일이다. 한 달 동안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함께 적으면 현금흐름이 보인다. 여기에는 액수뿐 아니라 날짜도 포함된다. 월급을 받는 날보다 월세를 내는 날이 먼저라면, 월간 수입이 충분해도 며칠 동안 돈이 부족할 수 있다.

지윤은 최근 세 달의 거래 내역을 펼쳐 다음처럼 묶었다. 아래 금액은 설명을 위한 가정이며 권장 생활비 비율은 아니다.

한 달의 돈금액살펴볼 내용
실수령 급여300만 원실제 입금액
주거·공과금·통신95만 원반복되는 기본 지출
식비·교통·생활70만 원달마다 달라지는 지출
외식·취미·구독35만 원만족도와 조정 여지
대출 원리금 상환25만 원원금과 이자를 구분
연간 지출용 적립20만 원보험료·경조사·수리비 등
남는 금액55만 원비상자금·목표 저축의 재원

마지막 줄의 55만 원은 당장 주식에 넣을 돈으로 확정된 금액이 아니다. 지윤은 그 돈으로 비상자금도 만들고, 이사 비용도 준비해야 한다. 남는 돈의 용도를 정하는 일은 수입과 지출을 확인한 다음에 시작된다.

카드 사용 내역과 계좌 출금을 합칠 때는 같은 지출을 두 번 세지 않도록 주의하자. 물건을 산 날 생활비로 기록했다면, 카드값을 결제하는 날 다시 생활비로 더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준으로 꾸준히 기록하는 편이 복잡한 가계부를 며칠 쓰다 포기하는 것보다 유용하다.

가계부에 없던 지출은 정말 뜻밖이었을까

지윤의 가계부는 평범한 달에는 흑자였다. 그런데 자동차 보험료를 내는 달, 명절이 있는 달, 가족 생일이 겹치는 달에는 늘 적자가 났다. 그때마다 “이번 달만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특별한 달도 생활의 일부다. 1년에 한 번 내는 돈은 12로 나누어 매달 준비할 수 있다. 가령 1년 동안 예상되는 비정기 지출이 240만 원이면 매달 20만 원씩 따로 둔다. 그 통장의 잔액이 줄어드는 것은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다. 예정대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해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예상하지 못한 치료비는 금액과 시점을 정하기 어렵다. 이때 쓰는 돈이 비상자금이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도 비상자금을 예상 밖의 지출과 소득 중단에 대비한 별도 자금으로 설명하며, 필요한 규모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안내한다. CFPB 비상자금 안내

생활비 몇 개월분이라는 기준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고정 급여가 있는 사람과 계절마다 수입이 다른 사람, 혼자 사는 사람과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같은 금액을 적용하기 어렵다. 우선 급하게 생길 법한 지출 하나를 감당할 금액부터 정해도 된다.

비상자금의 조건을 생각하면 보관 방식도 달라진다.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지, 인출하는 순간 가격이 크게 떨어져 있을 가능성은 없는지부터 보게 된다. 수익률이 조금 높더라도 중도 해지 손실이 크거나 가격이 출렁이면 비상자금의 역할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월급과 재산은 다른 숫자다

현금흐름이 한 달의 움직임이라면, 순자산은 특정한 날의 재산 상태다. 계산은 단순하다.

순자산 = 가지고 있는 자산 − 갚아야 할 부채

가상의 예로 예금 500만 원, 투자자산 300만 원, 돌려받을 임차보증금 2,000만 원이 있다면 자산은 2,800만 원이다. 대출이 1,000만 원이면 순자산은 1,800만 원이다. 보증금은 반환받을 수 있다는 가정으로 넣었으며, 실제 회수 가능성과 시점은 따로 살펴야 한다.

이 구분은 작은 판단을 바꾼다. 대출 원금 10만 원을 갚으면 통장의 현금은 줄지만 부채도 같은 만큼 줄어든다. 이 거래만 놓고 보면 순자산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이자 1만 원을 내면 현금은 줄고 부채 원금은 그대로이므로 순자산도 1만 원 줄어든다. 그래서 원금 상환과 이자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자산의 크기만큼 현금화 가능성도 중요하다. 보증금이 많다고 다음 주 병원비를 바로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순자산과 넉넉한 생활자금은 늘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한 달의 움직임                 특정한 날의 상태
수입 → 지출 → 남는 돈          자산 − 부채 = 순자산
          ↓
   비상자금과 목표 저축

도해: 현금흐름은 기간을, 순자산은 한 시점을 본다.

돈마다 필요한 날짜가 있다

지윤은 남은 55만 원에 한 가지 이름을 붙이려다가 멈췄다. 비상자금을 채우는 데 필요한 돈, 2년 뒤 이사를 위한 돈, 훨씬 뒤의 생활을 위한 돈을 한 통장에 넣으면 서로의 목적이 흐려질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종이에 목표와 시점을 썼다. 통장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같은 통장을 사용하더라도 얼마가 어떤 목적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하는지 알면 된다. 목적 없이 계좌만 늘리면 관리할 비밀번호만 많아질 수 있다.

가까운 날짜에 꼭 써야 할 돈은 손실을 회복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대로 오래 남겨둘 수 있는 돈에는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이후 강의에서 주식과 채권을 살펴볼 때도 이 날짜가 판단의 기준으로 남는다.

대출이 있다면 금리와 상환 조건도 옆에 적어 두자. 빚을 줄일 때 아낄 이자와 투자의 불확실한 수익을 비교할 준비가 된다. 다만 현금을 모두 상환에 써버렸다가 생활비가 모자라 더 비싼 돈을 빌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도록, 다음 지출일까지의 현금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면 월평균만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 좋다. 일이 많았던 달의 수입이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입이 적었던 달에도 필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수입이 좋은 달에 얼마를 남겨둘지 정해보자. 같은 연간 소득이라도 들어오는 시점이 고르지 않으면 필요한 현금 여유가 달라진다.

첫 장에 적어둘 세 줄

돈을 기록하다 보면 쉽게 자책하게 된다. 지난달의 배달 음식과 충동구매가 모두 잘못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록의 목적은 과거의 자신을 혼내는 데 있지 않다. 다음 달에 바꿀 수 있는 선택을 찾는 데 있다.

지윤은 거의 쓰지 않는 구독 하나를 해지했지만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은 남겼다. 만족도는 낮고 습관으로 이어가던 비용을 먼저 줄인 것이다. 수입이 필수 지출에도 못 미친다면 몇 잔의 커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주거비, 부채 조건, 소득을 늘릴 여건처럼 더 큰 항목을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완벽한 가계부 대신 세 줄만 써보자. “한 달에 실제로 들어오는 돈”, “이미 사용처가 정해진 돈”, “앞으로 남겨두고 싶은 돈.” 최근 거래 내역을 보고 대략 적은 다음, 다음 월급날에 고치면 된다. 특히 앞으로 30일 안에 결제될 큰 금액에 표시해두면 통장 잔액을 덜 오해하게 된다.

지윤의 월급은 다음 달에도 300만 원이었다. 달라진 것은 잔액 옆에 보이지 않던 이름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월세, 보험료, 뜻밖의 병원비, 두 해 뒤의 이사. 돈에 이름이 생기자, 얼마를 남길 수 있는지도 조금씩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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