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던 우유와 달걀, 식빵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특별히 더 담은 것이 없는데 합계는 기억보다 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에서 “물가 상승률 둔화”라는 제목을 본다. 반가운 소식이라는데, 조금 전 받은 영수증은 다른 말을 하는 것 같다.
이때 통계가 틀렸다고 단정할 필요도, 내 느낌이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뉴스가 말하는 숫자와 영수증이 보여주는 숫자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을 수 있다.
물가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나누어야 할 것은 가격의 높이와 가격이 오르는 속도다.
덜 올랐다는 말은 내려갔다는 말과 다르다
작년에 10만 원이던 장바구니가 올해 10만 5천 원이면 물가는 5% 오른 것이다. 그다음 해 상승률이 2%로 낮아졌다고 하자. 장바구니 가격은 10만 2천 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올라간 10만 5천 원을 기준으로 2%가 더해져 10만 7,100원이 된다.
| 시점 | 같은 장바구니 가격 | 직전 해 대비 변화 |
|---|---|---|
| 출발점 | 100,000원 | — |
| 1년 뒤 | 105,000원 | +5% |
| 2년 뒤 | 107,100원 | +2% |
가상의 고정 장바구니다. 실제 소비자물가지수 자료가 아니다.

그림: 본문의 가정과 계산으로 작성한 설명용 자료.
5%에서 2%로 낮아진 것은 상승 속도다. 이런 현상을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전반적인 가격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과는 구별된다. 특정 채소 가격이 한 주 내려갔다고 경제 전체가 디플레이션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폭넓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움직임을 다루는 개념이다. IMF 인플레이션 해설
여기에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의 차이도 있다. 상승률이 5%에서 2%가 되었다면 3%포인트 낮아졌다. 원래 상승률 5%에 비해서는 60% 줄어든 셈이다. 같은 변화를 표현해도 기준을 어디에 놓는지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기사에 두 표현이 섞여 있으면 단위를 먼저 읽어보자.
평균 장바구니와 나의 장바구니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소비자물가지수, CPI는 여러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하나의 지수로 묶은 것이다. 모든 품목을 똑같이 취급하지 않고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반영한다. 무엇을 조사하고 어떻게 가중치를 정하는지는 나라와 통계 체계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그 평균 장바구니를 그대로 사지 않는다. 차로 통근하는 사람은 연료비에 민감하고,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은 다른 비용에 더 영향을 받는다. 월세를 내는 사람과 주거비가 이미 고정된 사람에게 같은 달의 물가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도 가구의 지출 구성이 평균과 다르면 체감하는 물가 상승률이 CPI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BLS 소비자물가지수 문답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한 가구의 지출 중 식비가 40%, 나머지가 60%라고 가정한다. 식비가 10% 오르고 나머지 가격이 2% 오르면, 지출량을 바꾸지 않았을 때 이 가구의 비용 상승률은 약 5.2%다.
40% × 10% + 60% × 2% = 5.2%
이것은 두 묶음으로 단순화한 개인 장바구니 계산이다. 실제 CPI 산식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평균 통계와 내 지출의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도움이 된다.
가격뿐 아니라 산 양도 확인해야 한다. 식비가 지난달보다 15% 늘었더라도 외식 횟수가 많아졌다면 전부 가격 상승 때문은 아니다. 자주 사는 품목 몇 개를 골라 같은 용량, 같은 수량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소비 변화와 가격 변화를 조금씩 분리할 수 있다.
잔액은 늘었는데 살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이제 지난 강의의 이자로 돌아가자. 100만 원을 맡겨 1년 뒤 104만 원이 되었다. 같은 기간 물가가 5% 올랐다면 돈의 구매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에 100만 원이던 묶음을 올해 사려면 105만 원이 필요하다. 내 돈은 104만 원이므로 그 묶음을 전부 살 수 없다. 숫자로 표시된 수익률은 4%지만, 구매력으로 본 실질 수익률은 약 −0.95%다.
실질 수익률 = (1 + 명목 수익률) ÷ (1 + 물가 상승률) − 1
1.04 ÷ 1.05 − 1 ≈ −0.95%
물가 상승률과 수익률이 작을 때는 두 값을 빼서 대략 계산하기도 한다. 이 예에서는 4% − 5% = −1%다. 정확한 값은 나눗셈으로 구하며, 이자에 세금이나 비용이 붙으면 실제 결과는 더 달라진다.
월급에도 같은 생각을 적용할 수 있다. 명목 월급이 3% 오르고 내 생활비 묶음의 가격이 5% 올랐다면, 같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쓸 수 있는 여유는 줄어들 수 있다. 급여 명세서의 숫자가 오른 것과 생활 수준이 나아진 것은 별개의 일이다.
물가는 왜 오르는가
같은 가격 상승이라도 출발점은 다르다. 사람들이 물건을 더 많이 사려는데 생산이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수요가 크게 늘지 않았어도 흉작이나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공급이 줄거나 생산비가 높아질 수 있다. 여러 원인이 겹치기도 한다.
작은 빵집을 생각해보자. 근처에 사무실이 생겨 손님이 늘었는데 오븐은 한 대뿐이면, 빵집은 가격을 올려도 물건을 팔 수 있을지 고민한다. 밀가루와 전기료가 오른 경우에는 손님 수가 그대로여도 기존 가격으로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 두 상황 모두 빵값은 오르지만 대응 방법까지 같지는 않다.
사람들의 예상도 영향을 준다. 앞으로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으면 기업은 가격을 미리 조정하고, 노동자는 임금 협상에서 물가를 반영하려 한다. 다만 이런 연결이 언제나 같은 강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 계약, 생산성, 노동시장 사정이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물가 기사에서 “올랐다” 다음에 읽어야 할 것은 무엇이 올랐는지다. 식료품인가, 에너지인가, 여러 서비스인가. 한 품목의 충격인지 넓은 범위의 변화인지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해의 숫자도 오늘의 뉴스에 들어 있다
물가가 전년 같은 달보다 얼마나 올랐는지 계산할 때는 올해와 지난해의 두 가격을 비교한다. 지난해 가격이 유난히 높았다면 올해의 상승률은 작게 나올 수 있다. 비교 기준이 결과에 영향을 주는 기저효과다.
가령 어떤 품목의 가격이 작년 1월 100에서 2월 120으로 급등했고, 올해 1월과 2월에는 모두 120이라고 하자.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올해 1월 20%, 2월 0%다. 올해 들어 가격은 그대로인데도 전년 대비 숫자는 크게 내려간다.
이 때문에 전년 대비와 전월 대비를 함께 보면 도움이 된다. 다만 명절, 계절, 휴가처럼 반복되는 요인이 있는 통계는 계절조정 여부도 맞춰서 비교해야 한다. 월간 수치 하나를 곧바로 장기 추세로 확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지수의 숫자는 화폐 금액과도 다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120이라는 것은 기준 시점에 대한 상대적인 수준이지, 장바구니가 120원이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지수 숫자만 비교해 어느 나라가 더 비싸다고 말할 수도 없다. 기준 시점과 측정 방식부터 확인해야 한다.
다음에 물가 뉴스를 읽을 때는 제목 아래에 세 가지를 적어보자. 어떤 품목이 움직였는지, 어느 기간과 비교했는지, 내 지출에서 그 품목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이것만으로도 막연한 불안이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물가를 안다고 다음 달의 장바구니 가격을 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영수증과 뉴스가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 설명이 있어야 저축의 이자도, 월급의 인상도, 오래 뒤에 필요한 돈도 같은 기준 위에서 생각할 수 있다.